피아노 이야기 1 – 피아노의 탄생과 역사 > 다양한 음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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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이야기 1 – 피아노의 탄생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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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직브레일
  • 분류 :
  •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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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를 모르는 분은 아마도 없겠죠? 누구라도 한 번은 피아노 건반을 눌러 보거나 피아노 음악을 들어본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너무나도 친숙한 ‘악기의 왕’이라는 피아노라는 악기.   그렇지만 피아노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피아노는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이번 음악 이야기에서는 피아노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자! 그럼 본격적인 피아노 이야기를 들어가려면 음악이 없으면 허전하겠죠?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쇼팽의 여러 주옥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오르간, 하프시코드처럼 비슷하게 생긴 건반악기와 피아노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피아노 조곡, 푸가, 소나타, 변주곡 등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피아노가 탄생하고 사랑받게 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피아노가 태어나기 전에

  피아노는 아주아주 오래된 악기는 아닙니다. 18세기에 처음 발명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건반을 손(혹은 발)으로 눌러 소리를 내는 ‘건반악기’는 피아노 이전에도 존재했죠. 대표적인 것으로 대형 교회에서 볼 수 있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데요. 오르간의 기원이 되는 악기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에서 시작해 그리스로 전파되어 발달된 이러한 형태의 오르간은 수압을 이용한 물 오르간(water organ, hydraulic organ)이었습니다.

   오르간이 소리를 내는 원리는 파이프를 통해 바람이 지나가게 만들어 진동으로 음을 내는 것이죠. 그리스 시대를 지나 중세, 르네상스를 거치며 오르간은 지금의 피아노와 같은 박스 형태와 대형 교회에서 볼 수 있는 파이프 오르간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90년대 우리나라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금’이라 부르는 오르간은 정확히 말하면 ‘리드 오르간’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피아노보다도 늦은 19세기 중엽에 발명되었죠.

  이렇게 파이프가 있고 공기의 송풍과 진동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오르간은 건반이 있다는 점에선 피아노와 유사하지만, 소리를 내는 원리에서는 피아노와는 많이 다른 악기입니다.

 

  피아노의 안을 들여다보신 적이 있나요? 피아노 안에는 여러 개의 줄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피아노의 소리가 이상해졌을 때 ‘조율’을 한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줄들이 팽팽하게 잘 연결되어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이죠. 이처럼 피아노가 소리를 내는 것은 파이프와 같은 ‘관’이 아니라 기타, 바이올린 같은 ‘현’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박스 안에 고정된 줄에 어떤 식의 힘을 작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악기가 되는 것이죠.

 

  피아노가 태어나기 전에 사랑 받았던 건반 악기는 ‘하프시코드’였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피아노와 다른 점이 없죠. 박스 안에 줄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같습니다. 하지만 건반을 눌렀을 때 현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하프시코드는 줄을 뜯어서(튕겨서) 소리를 내는데요. 이 때문에 피아노와는 전혀 다른 음색이 나오게 됩니다. 들어 보시면 피아노와 다른 청량한 느낌을 받는데요. 바로크 시대라고 말하는 바흐, 헨델이 활동하던 시기는 이 하프시코드의 전성기였고 음악가들이 사랑하는 악기였습니다. 바흐, 헨델의 음악을 피아노 연주로 많이 접하게 되지만, 하프시코드 연주를 전제로 작곡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프시코드 버전을 들어 보시길 바래요.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탄생

  피아노는 한 악기 장인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   토스카나 대공국의 군주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의 후원이 있었죠.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것으로 유명한 메디치 가문의 투자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피아노입니다.

  1688년, 베니스의 카니발을 즐기기 위해 피렌체에서 휴양을 떠났던 페르디난도는 돌아오는 길 파두아에서 젊은 악기 제조사 크리스토포리가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르디난도는 건반 음악에 조예가 깊고 관심이 많아 자신의 궁정에 수많은 하프시코드 및 악기를 소유하고 있었고, 자신만의 악기를 새로 만들어 내는 기술자들을 데리고 있었죠. 마침 자신의 휘하에 있던 악기 관리 장인을 잃게 된 페르디난도는 크리스토포리를 고용합니다. 페르디난도는 젊은 크리스토포리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보장했고, 피렌체에 온 악기장인 크리스토포리는 궁정의 악기들을 관리하면서 페르디난도를 위한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운 침발로 디 시프레소디 피아노 에 포르테(un cimbalo di cipresso di piano e forte)’라고 부른 이 건반 악기는 작고(piano) 큰(forte) 소리를 갖춘 삼나무 건반’ 이란 뜻이었죠. 이 긴 이름이 결국 줄여져 현재 우리가 부르는 피아노가 되었는데요. 이 악기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바로 ‘piano e forte’, 즉 음의 셈여림을 연주자가 제어할 수 있게 고안됐다는 점입니다.

  피아노와 하프시코드의 차이점은 하프시코드가 현을 ‘뜯는’ 방식으로 소리를 나게 한다면 피아노는 현을 ‘때리는’ 방식으로 소리를 나게 합니다. 하프시코드의 음색은 맑고 청량해 인기를 끌었지만 아쉬움을 줬던 것은 특유의 ‘뜯는’ 방식 때문에 소리의 셈여림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없었습니다.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에서 구현한 방식은 건반에 힘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 음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죠.

  크리스토포리가 현을 ‘때리는’ 방식을 처음으로 생각해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15세기부터 클라비코드, 덜시머 같은 악기 또한 피아노의 메커니즘과 비슷하게 작동했죠. 하지만 음량, 실용적인 이유 등으로 시장에서의 승자는 피아노가 되었고 그 뒤로 건반 악기의 왕은 피아노가 되었습니다.

 

    피아노의 성장

‘해머’라고 하는 뭉치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내는 피아노는 악기가 단순히 소리를 내는 것뿐 아니라 연주자의 정서나 해석을 넣을 수 있을 가능성을 더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피아노 이전의 건반 악기는 현악기 보다 그 역할이 적었습니다. 파이프 오르간 같은 대형 악기가 아닌 하프시코드나 다른 건반 악기들은 그 소리가 작거나 표현력의 한계가 있었죠. 하지만 피아노로 인해 새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가 처음 등장하자마자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하프시코드가 건반 악기 시장을 점유하고 있었고, 하프시코드에 비해 피아노는 소리를 내는 그 방식으로 인해 소리가 둔탁하게 느껴졌었죠. 피아노가 크리스토포리에 의해 개발된 것은 1700년대 초였는데, 모차르트가 처음 피아노를 접한 것이 여행 중이었던 1770년대였다고 하니 격차가 상당하죠.

   피아노는 악기 장인들에 의해 개량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피아노에 있는 ‘페달’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장치들이 고안되었고 소리도 개량되어 갔지요. 초기 피아노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바흐도 1749년 정도에 이르면 연주회에서 사용하거나 피아노 제작자 질베르만의 피아노를 한 백작에게 판매하는 것을 도와줬다는 기록도 남아있죠. 점점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던 피아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한 천재의 역할이 컸습니다.

 

  음악 천재 모차르트는 유럽 곳곳을 순회하던 중 1770년대 중반 뮌헨 지역에서 피아노를 처음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이 새로운 악기에 대한 가능성을 간파하고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협주곡의 형태는 독주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맞서는 느낌의 형태가 되는데 모차르트는 이 독주의 역할에 피아노를 내세운 것이죠. 모차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을 대중 앞에 과시하는 것을 거리낌 없어 하고 즐겼는데, 피아노라는 악기는 이런 모차르트의 성정에 아주 적합한 악기였습니다. 대중 공연이 넓게 퍼지기 시작했던 사회 분위기에서 빨간 코트를 입고, 지금의 피아노보다 훨씬 큰 형태의 페달 건반까지 더해진, 양손과 양발을 이용해 화려한 연주를 뽐내는 모차르트의 공연은 관객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습니다.

 

    피아노 열풍

  모차르트의 협주곡이 피아노에 대한 잠재력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킨 이후 베토벤, 낭만파 시대로 이어지며 피아노는 음악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점점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피아노의 열풍은 아직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미국 독립 혁명 등을 거친 19세기의 유럽 사회는 정치 경제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죠.

  부르주아 중산층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입지가 확대됨에 따라 문화 수준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무언가가 필요했죠. 피아노 개발에 결정적인 후원이 되었던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에서 알 수 있듯이, 하프시코드, 피아노 같은 악기는 귀족들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몸체를 고급 소재로 꾸미고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 넣는 것으로 귀족들은 자신의 권위를 과시했었습니다.

  혁명 이후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던 부르주아들은 아마 이것이 굉장히 부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넓은 저택 한복판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것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수단이었죠. 재밌는 것은 1980~90년대 고도 발전을 이룩한 한국 사회의 중산층들도 유행처럼 피아노를 들여놓았었죠. 18~19세기 유럽 부르주아들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피아노는 상당히 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들의 허영심과 피아노 제작자들의 영업활동(그들은 적극적으로 할부 판매를 권했다고 합니다)으로 피아노는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악기의 보급뿐 아니라 문화적인 영향도 있었습니다. 중산층의 폭이 넓어지면서 ‘교양’에 대한 관심도 커졌는데요. 여성들이 악기를 다루는 것은 당시 귀부인들의 교양의 척도였습니다. 여러 가지 악기가 있었음에도 피아노는 가장 선호되는 악기였습니다. 피아노는 혼자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유명한 곡들을 소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고, 오보에 등과 같이 긴 관 형태의 관악기를 여성이 입에 무는 것이 성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터부시하는 것도 있었죠.

  유럽에서 붐이 일었던 피아노는 그대로 미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넘쳐나면서 피아노는 이제 귀족들, 부르주아 중산층의 전유물이 아니게끔 보급됩니다. 미국 농촌의 낡은 오두막과 길거리에까지 피아노는 전파되었고, 이제 피아노는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벗어나 재즈, 블루스, 락 같은 음악의 다른 영역에까지 넘어갑니다. 그야말로 피아노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전자피아노, 키보드가 개발되면서 피아노는 이제 점점 더 친숙한 악기가 되었습니다. 컴퓨터 키보드나 태블릿PC로도 피아노가 구현되죠. 클래식 음악에서부터 아이돌 대중음악에까지 피아노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음악은 없다고 봐야겠습니다. 동네 음악학원에서 근사한 레스토랑, 엄숙한 클래식 공연장까지 장소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팔방미인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겠네요.

 

  어떠신가요? 피아노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고 발전했는지 조금 감이 오시나요? 다음 시간에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 피아노 음악의 종류와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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