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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4중주에서 비롯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우정
- 작성자 :
- 뮤직브레일
- 분류 :
-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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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억 나실지 모르겠지만, 작년 2023년 새해를 맞은 첫 음악이야기에서는 1810년대 초반에 태어난 쇼팽, 슈만, 리스트, 브람스의 우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요. 올 새해를 맞아 올리는 첫 음악이야기 역시 클래식 음악가들의 우정 두 번째 시간으로 24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진정한 우정을 보여주었던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우정 이야기를 나눌까 합니다.
18세기에는 뛰어난 음악가들이 직접 만나 실력을 겨루는 것이 큰 흥밋거리였습니다. 즉흥연주 실력은 음악가의 내공을 보여주는 가늠자였습니다. 바흐와 즉흥연주를 겨루기로 했던 루이 마르샹이 자신이 없어 줄행랑을 놓은 사실은 유명하지요. 헨델과 스카를라티가 쳄발로와 오르간 실력을 겨뤘는데, 쳄발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오르간은 헨델이 압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당대의 비르투오소virtuoso(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대가) 무치오 클레멘티와 피아노 즉흥연주 실력을 겨뤘는데, "그의 테크닉은 완벽하다. 특히 3도와 6도 진행은 놀랍지만, 느낌이 없다. 그는 기계처럼 연주한다"고 상대를 평했지요.
그러면 하이든(1732~1809)과 모차르트(1756~1791)는? 둘은 실력을 겨룬 적이 없습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대하며 "파파 하이든"이라 불렀고, 하이든은 "모차르트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둘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762년 모차르트가 여섯살 때 떠난 3년간의 유럽 여행에서는 만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하이든은 에스터하지 공의 부악장으로 갓 취임했고, 모차르트의 여행은 하이든이 있는 곳과는 반대쪽을 향했으니까요. 1784년 말의 크리스마스 자선 연주회 때 두 사람의 음악이 모두 연주되었으니 그때 처음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서로 상대방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악보를 통해 상대방의 음악을 이해하며 찬탄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이든은 1784년 말 프리메이슨 '참된 융화를 위하여'에 가입했습니다.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 동지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 모임에서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1785년 1월 28일,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프리메이슨 가입 의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하이든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출석하지 못했습니다. 하이든은 2월 11일에 다시 열린 가입 의식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모차르트가 연주회가 있어서 불참했습니다.
그 이튿날 모차르트가 하이든을 위한 현악사중주 파티를 열어, 1785년 2월 12일에 드디어 두 사람의 음악적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날, 모차르트가 하이든에게 헌정한 현악사중주 세 곡이 연주되었습니다. 제1바이올린 하이든, 제2바이올린 디터스도르프, 첼로 반할, 그리고 모차르트가 비올라를 맡았습니다. 하이든의 '러시아 사중주' Op.33에 자극받은 젊은 모차르트가 세 해 동안 공들여 만든 작품들이 초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모임은 하이든에게도 떨리고 긴장되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가 뛰어난 천재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칫 자기와 모차르트가 비교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하이든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가 최고임을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말했습니다. "신 앞에서, 그리고 정직한 인간으로서 말하는데, 당신의 아들은 지금까지 내가 직접 알거나 이름으로 아는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감각이 뛰어나고, 작곡에 대한 깊은 지식에 통달해 있습니다."
모차르트도 자기 현악사중주곡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박한 자기과시로 존경하는 선배를 무안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자기가 공들여 만든 작품을 함께 연주하고 선배의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이든은 빈 궁정에서 모차르트를 질시하고 깎아내리려 했던 살리에리 일파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모차르트의 위대성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칭찬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해 9월, 모차르트는 여섯 개의 사중주곡을 '매우 뛰어난 인물의 보호와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떠나보내는 자식들'에 비유하며 하이든에게 정중히 헌정했습니다. "당신이 이들을 친절히 받아 주시고, 이들의 아버지, 안내자, 친구가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순간부터 저는 이들에 대한 모든 권한을 당신에게 양도하며, 이들이 가진 결함을 너그럽게 보아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버지의 편애 때문에 제 눈은 그런 결함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이든의 현악사중주는 모차르트에게 영감과 함께 새로운 도전의식을 주었습니다. 모차르트는 다른 사람의 성취를 제대로 볼 줄 알았고, 그것을 자신의 풍요로운 자산으로 소화하고 흡수할 줄 알았습니다. 어떤 음악적 유산이든 자기 토양으로 받아들여 독창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는 데에 모차르트의 진정한 천재성이 있습니다.
거꾸로 모차르트 음악이 하이든에게 영향을 미친 점도 있을까요?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모차르트의 존재 자체가 하이든에게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하이든이 절정기의 모차르트 악보를 구해서 연구한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현악사중주곡에서 모차르트가 들려준 불협화음과 반음계 화성은 그 뒤의 하이든 음악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모차르트가 그에게 현정한 현악사중주 C장조의 느린 도입부가 아니었다면 하이든은 아마도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제 1곡 '혼돈의 표현'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이 작품을 공들여서 만든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이 작품들만 특별히 진땀을 빼며 작곡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이든이 '완전히 새롭고 특별한 기법'으로 작곡했다는 '러시아 사중주', 모차르트는 선배의 노작을 진지하게 공부했고, 여느 작품보다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새로운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했을 것입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즉시 알아보았고, 그가 이미 자신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음을 흔쾌히 인정할 인간적인 용기와 지혜와 솔직함이 있었습니다. 자칫 강퍅한 음악 경연으로 흐를 수 있었던 두 사람의 만남은 스물네 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소탈한 우정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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